40년 연기 인생, 여전히 아름다운 배우 양희경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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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연기 인생, 여전히 아름다운 배우 양희경

2015.11.05 · HEYDAY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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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심과 계획 없이 한 가지 일을 계속하는 것이 가능할까? 매일 맡은 배역에만 충실했다는 배우 양희경이 ‘행운’이었다고 얘기하는 40년 연기 인생.

 


 

포털사이트에는 1985년도 데뷔(연극 <한씨연대기>)로, 위키피디아에는 1975년부터 활동한 것으로 나오는데 어느 쪽이 맞나요?

‘돈을 버는 일’을 시작한 것은 1975년이에요. 뽀빠이 이상용 씨와 함께 <모이자 노래하자>라는 어린이 프로의 사회를 봤답니다. 이듬해에는 MBC FM에서 <4시의 희망음악>이라는 프로그램의 DJ를 시작했고요. 그러니까 어떻게 하다 보니 시작은 연기가 아니고 MC였네요.

 

방송의 사회자가 된 것은 ‘어떻게 하다 보니’는 아니었을 텐데요?

언니(가수 양희은)와 함께 라디오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몇 번 나갔는데 그때 제가 말하는 걸 재미있게 들었는지 PD가 제의를 해왔어요. 동문이나 다른 학교 학생들과 연극제 같은 연극 무대에 서곤 했지만 프로 무대는 아니었고요.

 

일찍부터 드라마와 연극, 뮤지컬, 노래까지 했어요. 당시엔 흔치 않았을 것 같아요.

뮤지컬은 해마다 한 편씩은 쭉 해왔어요. 최근에는 <사운드 오브 뮤직>에 출연했고요. 음반은 1989년에 한돌 씨의 노래로 한 번 냈지만 활동은 전혀 안 했답니다. 1970년대 후반에 <한사람> <네 꿈을 펼쳐라> 같은 언니의 음반에 듀엣으로 참여했을 때만 불렀어요. 그리고 굉장히 오랜만에 최근에 ‘넌 참 예뻐’란 곡을 언니와 함께 불렀고요.

 

40년 연기 인생을 돌아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연기 인생이랄 것도 없어요. 제 삶과 하나가 됐지요. 연기를 전공하고(서울예술대학 연극과 1기) 연기를 하면서도 일은 연기가 아닌 일로 시작하고 결혼을 했고 다시 연극 무대로 돌아와서 공연을 하고. 쭉 생활 속의 한 부분처럼 이어져온 그런 과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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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침 없이 자연스럽게 오늘에 이른 것인가요?

일을 찾아다니면서 하지는 않았어요. 40대 초중반에 미친 듯이 일할 때가 있었는데 그때도 자연스럽게 일이 많았어요. 연극 <늙은 창녀의 노래>, 주말 드라마 <목욕탕집 남자들>, 라디오 <트로트 가요앨범>에 영화까지. 지금이야 누가 돈 주면서 그렇게 해 달라고 해도 거절할 만큼 일을 많이 했지만 딱히 조절할 생각도 못했어요. 전 ‘무계획이 계획’인 사람이거든요. 그 대신 주어진 일을 200%, 300% 하자고 생각하지요. 배우라는 직업은 항상 선택받는 입장이잖아요. 우리는 뽑히는 쪽이니 뽑혀서 가능하면 하는 것이고 불가능하면 못하는 것이죠.

 

요즘은 중년 남자배우 전성시대인 반면 중년 여배우들은 ‘엄마’ 역할 외엔 설 자리가 적습니다.

전 이모나 고모로 흘러간 경우예요. 말썽을 잘 일으키고 ‘돌싱 이거나 싱글인 이모나 고모 캐릭터’가 굳어져서 캐스팅하는 쪽이나 제작하는 쪽이나 그런 역할이 있으면 저를 1순위로 생각하는 것 같더군요. 그런데 그게 너무 지루했어요. 앞으로도 내가 대사를 외울 수 있는 한 연기를 할 텐데 이런 식으로 몇 십 년을 살 수 있을까. 그 즈음에 돌파구가 되어준 것이 연극 <늙은 창녀의 노래>(1995년)랍니다.

국민 엄마를 포기한 대신 다들 나이보다 젊게 보지요?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더라고요. 손녀딸이 있다고 하면 깜짝 놀라요. 철없어 보이고 좋지요, 하하하. 드라마 속 캐릭터, 이미지가 큰 작용을 했겠지요. 나도 제발 엄마 역할 좀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했어요. 드라마 <비밀>에서도 엄마 역할이었고 미니시리즈에서는 곧잘 엄마 역할을 했는데 사람들 이미지 속에는 엄마로 남아 있지 않나 봐요. 엄마든 고모든 저는 편안한 캐릭터가 좋아요. 제 모습과 가장 비슷한. 그런데 그런 역할을 만나는 게 쉽지 않아요.

연기자로서 직업적 회의를 느낀 건가요?

회의까지는 아니지만 천편일률적인 역할에 지쳤던 것이죠. 그런데 2년 정도 <늙은 창녀의 노래>를 연기하고 났더니 ‘아, 내가 앞으로 똑같은 캐릭터를 30년 연기해도 할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작품은 제게 굉장히 큰 의미를 지닌, 일종의 치료 같은 작품이에요. 처음 대본을 받아 읽었을 때 머릿속에서 불꽃이 튀었어요. 배우 인생에 그런 대본을 받게 되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전성기였던 셈이죠. 그 뒤로 10주년 공연으로 다시 만났는데 역시 좋았어요. ‘참 좋은 작품이구나‘ 생각했어요. 배우가 그런 작품을 만나는 것은 필연이에요. 행운이자 축복이지요.

 

연기를 하라고 정해준 것도 언니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배우 양희경을 가수 양희은과 떼어놓고 얘기하기는 어렵지요.

언니가 사람을 보는 눈, 직관이 있어요. 누가 좋은 사람이고 어떤 재능이 있나 잘 봐요. 언니는 제게 부모나 마찬가지였어요. 가장이었고 공부 시키고 시집보내고. 게다가 매의 눈으로 제 진로까지 딱 맞게 정해줬으니까요.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도 서울예전에 다닌 2년이랍니다. 연기하는 것 자체가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어요.

 

두 사람이 작년에는 ‘넌 아직 예뻐’라는 노래를 함께 부르고 두 사람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뮤지컬 <어디만큼 왔니>를 무대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가족은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상처를 주고받는 관계인 것 같아요. 우리 집안은 파란만장했으니 만약에 혼자였다면, 자매가 없었다면, 자매 대신 남매였다면 전혀 달랐을 거예요. 자매였기 때문에 뭉치고 위험한 과정을 잘 넘기고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자매가 모두 재주가 많은데 누굴 닮은 건가요?

외할머니는 캡이에요 캡. 동네 잔치와 김장때마다 다 불려 다니셨으니 음식 솜씨는 말할 것도 없겠죠. 사람들과 일하다가 노래 한 곡조 하시고, 음악이 나오면 재봉틀 하시다가도 덩실덩실 춤을 추셨어요. 혼자서도 잘 노시는 할머니였지요. 그게 우리 엄마, 이모, 저희들, 손주들에게까지 내려온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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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양희경의 전성기는 언제인가요?

변화 없는 연기 생활에 지칠 무렵 <늙은 창녀의 노래>라는 작품을 만났던 때예요. 일이 자석 달라붙듯 많이 붙어서 정신없이 일했던 기간이에요.

전 대사를 외울 수 있고 사람들이 불러줄 때까지 이 일을 하고 싶지만, 배우에게 은퇴가 어딨어요. 일 안 하면 은퇴고 다시 하면 재기인 것이죠. 어느 날 일모작이 기상이변으로 끝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요. 죽을 날을 생각할 나이지, 인생을 펼칠 나이는 아니잖아요. 그 대신 늙어서 수를 놓거나 재봉틀로 뭔가를 만들거나 제 목소리를 이용해 책 읽어주는 할머니로 봉사하거나 하는 삶을 살아야지요. 노년엔 먹는 것도 사는 것도 좀 더 천천히, 슬로 라이프로 살고 싶어요.

 

기획 이은석 사진 김도원(원더보이 스튜디오) 헤어 이일중 메이크업 서은영 패션 스타일링 김미연 장소 북한남갤러리
※ 이 기사는 <헤이데이> 11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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