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타고 가는 역사 탐방] ⑥ 한강을 바라보는 정자, 희우정(喜雨亭)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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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타고 가는 역사 탐방] ⑥ 한강을 바라보는 정자, 희우정(喜雨亭)

올해는 가뭄이 심하다. 사람들은 가뭄을 걱정하는 척하지만 사실은 그다지 걱정하는 것 같지 않다. 옛날에는 가뭄이 들면 나라님이 스스로 죄인을 자처하며 하늘에 비를 빌었다. 요즘은 웬만한 가뭄이 들어도 대통령이 눈도 꿈쩍하지 않는다. 쌀이 남아도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농업이 산업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도 되지 않는다.

‘어린 백셩이 (중략) 어엿비 녀겨 새로 스믈여듫 짜랄 맹’간 세종대왕은 가뭄으로 고생하는 백성을 위한 마음도 보통 임금들과 달랐나 보다. 가뭄 중에 민정시찰을 하다가 형 효령대군의 별장에 행차했는데 마침 비가 쏟아지니 반가운 마음에 별장에 달린 정자 이름을 ‘희우정’이라 바꿔 부르도록 했다 한다. 지금 망원동 강변북로에 인접해 있는 ‘망원정’에 얽힌 이야기다.

망원동 강변북로를 달리다 만날 수 있는 희우정(망원정) 모습. ©강기석

반가운 비가 내린 ‘희우정’ 의 유래

태종의 둘째아들 효령대군은 엄밀히 말해서 왕위를 양보한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동생에게 가게 돼 있는 왕위에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음으로 해서 큰 복락을 누렸다. 대신 불교에 심취해 온갖 지원을 아끼지 않아 불교계로부터 은인으로 받아들여졌으며, 부처님이 돌봐주셨는지 91세까지 장수를 누렸고 후손도 번창했다. 세종도 형을 끔찍이 챙겼는지 이곳저곳 좋은 땅에 살 곳, 쉴 곳들을 마련해 주었는데 수성동계곡 ‘비해당(匪懈堂)’이 그렇고 여기 ‘희우정’이 그렇다. 1424년에 세워진 이 정자의 원래 이름은 ‘합강정(合江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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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우정(망원정)에 올라서서 바라본 한강의 모습. ©강기석

세종은 이 정자에 형님 문안을 드리거나 놀러만 다닌 건 아니다. 이 정자는 한강에서 벌어지는 수군들의 훈련 장면을 지켜보는 지휘소의 기능도 가졌다. 조선실록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1434년(세종 16년) 3월 18일 ​세종이 희우정에 거둥하여 새로 제조한 전함(戰艦)을 관람하니, 왕세자가 거가를 호종하였다. 처음에 유구국(琉球國) 사람이 우리나라에 오니 그에게 명하여 전함을 제조하게 하고는, 이를 용산강 서쪽 서강(西江)에 띄우고 우리나라의 전함과 나란히 달려서 그 쾌둔(快鈍)의 정도를 비교하니 유구국 사람이 제작한 배가 약간 빨랐으나 심한 차이가 없었다. 혹은 물결을 따라 내려가 보기도 하고, 혹은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 보기도 하였는데 이와 같이 하기를 재삼 거듭한 뒤에 그만두었다.”

집의 운명도 주인의 운명을 닮는가보다. 효령대군은 88세 때인 1484년 희우정을 증손자뻘인 월산대군에게 넘겼다. 왕위가 효령대군을 넘어 동생 세종에게 갔듯이 월산대군도 성종의 형이면서도 왕위와는 인연이 없었다. 월산대군은 정자를 보수하여 ‘먼 경치도 잘 볼 수 있다’는 뜻으로 ‘망원정(望遠亭)’이라 이름을 고치기로 하고 어제(御製)를 청했다. 성종은 망원정시(望遠亭詩)와 아울러 서(序)를 지어 내린 후 민정시찰을 나간 길에 망원정에 들러 술자리를 베풀었다. 그래서 동네 이름도 망원동이 되었다. 지금도 정자 바깥쪽에는 망원정, 안쪽에는 희우정 현판이 걸려 있다.

 

일상에서 누리는 보물 같은 여유, 정자

조선시대 초엽에는 한강가에 이름난 정자나 당우(堂宇)들이 많았다고 한다. 희우정 외에도 낙천정(樂天亭), 칠덕정(七德亭), 압구정(鴨鷗亭), 제천정(齊川亭), 화양정(華陽亭), 황화정(皇華亭), 영복정(榮福亭), 효사정(孝思亭), 침류당(枕流堂) 등이 특히 유명했는데 그중 낙천정은 태종의 별궁이었고, 영복정은 양녕대군의 별서였다고 한다.

정자는 강가 경치 좋은 자리에 따로 짓기도 하고 집 경내에 짓기도 한다. 희우정은 저택 경내에 지은 케이스인 듯하다. 또 정자는 좋은 경치를 편안하게 구경하도록 마련된 건축물인데, 때로는 정자 자체가 좋은 경치를 이루기도 한다. 희우정이 또한 그런 케이스다.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지어진 희우정(망원정). 정자 자체로 좋은 경치가 되고 있다. ©강기석

지금의 희우정은 강변북로와 주변에 병풍처럼 줄지어 늘어선 아파트들 때문에 수려했던 옛 경치를 볼 수 없지만, 희우정 그 자체는 옛날을 상상하며 한두어 시간 머물며 즐기기에 족하다. 지하철 6호선 망원역 2번 출구로 나와 오른쪽으로 200m쯤 가서 큰 사거리에서 강변 쪽으로 우회전, 약 1㎞를 빠른 걸음으로 10여 분 가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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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로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곳에 위치한 희우정(망원정). 선조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강기석

인터넷을 찾아보니 ‘희우정송가(喜雨亭頌歌)’라는 한시가 뜬다. 문인 변계량이 효령대군과 세종 형제의 우의와, 백성을 어여삐 여기는 두 사람의 마음에 하늘이 감복하여 단비를 주신 것을 칭송한 것이라 한다.

翼彼新亭如鳳斯騫(익피신정여봉사건)
誰其作之君侯之賢(수기작지군후지현)
王出西郊匪遊非箭(왕출서교비유비전)
民方播種憂旱于田(민방파종우한우전)
王在于亭時雨沛然(왕재우정시우패연)
王宴君侯其鼓淵淵(왕연군후기고연연)
錫之亭名榮耀無前(석지정명영요무전)
君侯稽首聖德如天(군후계수성덕여천)
君侯稽首我后萬年(군후계수아후만년)
思我文人以永厥傳(사아문인이영궐전)
臣拜撰辭爲多士先(신배찬사위다사선)
瞻彼華峯維石可鐫(첨피화봉유석가전)
刊此頌章千古昭宣(간차송장천고소선)

날 듯한 새 정자가 봉황새 나는 듯한데
그 누가 지었는가 어지신 군후(君侯)였었네
왕이 서교(西郊)에 납시셨으나 놀이함이 아니오
백성이 한창 씨앗 뿌리는데 가뭄을 걱정하심이었다
왕이 정자(亭子)에 계시니 때 맞추어 비 쏟아지네
왕이 군후와 잔치 하시는데 저 북소리가 둥둥 울린다
정자 이름 내려 빛나는 영화가 전에 없었네
군후가 머리 조아리니 임금의 덕이 하늘과 같네
군후가 머리 조아리며 우리 임금 만년수를 축원하였다
문인(文人)에게 부탁하여 그 전(傳)함을 길이 하실새
신이 절하고 글을 지으니 많은 선비 중에 처음이었다
저 화봉(華峯, 북한산 봉우리)을 바라보니 오직 돌에 새길 만하네
이 기리는 글을 새겨서 천고(千古)에 밝게 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