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이긴’ 2015 중앙서울마라톤 완주기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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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를 이긴’ 2015 중앙서울마라톤 완주기

2015.11.06 · 이영란(전 매일경제 기자) 작성

“내가 나를 이겼다.” 최근 박명수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이 화제가 됐다. 박명수의 글 덕분에 ‘자승자강(自勝者强,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진정으로 강한 사람이라는 뜻)’이라는 사자성어까지 주목받았다. 박명수의 이 같은 발언은 자신이 제작에 참여한 신곡 ‘커피’가 아이유와 함께 부른 ‘레옹’보다 한 단계 높은 순위에 오른 것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최고 기록 3시간 27분보다 2분 앞당긴 목표

‘내가 나를 이기겠다’는 거창한 각오까지는 아니었지만 이번 가을 중앙서울마라톤을 앞두고 세운 목표 기록은 3시간 25분이었다. 그동안 중앙서울마라톤에서 세운 최고 기록은 2년 전의 3시간 29분이었다. 마라톤대회는 코스마다 난이도가 약간씩 다른데, 동아마라톤이 비교적 난이도가 낮은 편이다. 많은 달림이들의 최고 기록이 동아마라톤 기록인 것도 이 때문이다. 필자의 최고 기록도 지난 3월 동아마라톤에서 세운 3시간 27분이다. 체력으로나 나이로나 필자가 도달할 수 있는 한계점이다. 더 이상 욕심을 부리면 안 되지만 왠지 몇 달 전 분위기(?)에 휩쓸려 3시간 25분이라는 무리한 목표를 세우고 말았다.

사실 우리 몸은 노화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마라톤 기록도 자연스레 늦어지게 된다. 평균적으로 1년에 3분 정도가 늦춰진다고 한다. 예전 자신의 기록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 기록 경신인 셈이다.

11월 1일 잠실 종합운동장, 중앙서울마라톤이 열리는 날은 꽤 쌀쌀했다. 최저기온이 올 들어 가장 추운 3℃, 최고기온이 14℃에 불과했다. 달리기에 적당한 10℃ 내외보다 한참 기온이 떨어졌지만 더운 것보다 낫다는 위로를 스스로에게 보내본다.

출발선상에서 대기하는데 이런 저런 상념이 머리를 오간다. 이 시간을 위해 지난여름에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던가. 그렇다고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라는 시구가 생각났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오히려 약간의 긴장과 흥분이 온몸에 엔도르핀으로 작용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출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달림이들. ©박정량

오전 8시, 엘리트 부문에 이어 마스터스(아마추어) 부문 출발이다. 출발 신호와 함께 힘차게 달려 나간다. 마라톤에서는 초반에 오버페이스를 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슬로스타터’인 필자는 오히려 초반에 지나치게 늑장을 부려서는 안 된다. 목표 기록인 3시간 25분에 들어오려면 1㎞당 4분 50초 정도로 꾸준히 달려야 하는데, 초반 5㎞는 평균 5분 속도로 뛰기로 한다. 다행히 생각지도 않았는데 동료들이 페이스메이커를 하겠다고 나섰다. 페이스메이커를 따라 뛰면 혼자 뛰는 것보다 1~2분 정도 기록을 앞당길 수 있다. 등을 떠밀어주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달리는 리듬을 잃지 않도록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초반 5㎞까지의 페이스가 생각보다 잘 나온다. 오늘은 신기록을 세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살짝 생긴다. 이럴 때 페이스를 높이다가 후반에 가서 고생한다는 것은 13년차 마라토너 정도 되면 감으로도 알 수 있다. 최대한 몸을 아껴가면서 오버페이스를 하지 않도록 달려간다. 하프지점(21.0975㎞)을 지나 25㎞ 반환점까지도 몸이 가벼운 느낌은 지속된다. 반환점을 지나 30㎞까지는 이런 상태가 이어진다. 남은 거리를 목표 시간(3시간 25분)에 대입해보니 기록 경신에는 무리가 없을 것 같다.

 

그 자리에 그대로 서버리고 싶지만

30㎞를 넘어서자 거짓말처럼 컨디션이 처지기 시작한다. 다리가 점차 무거워지면서 몸에도 힘이 들어가는 것 같다. 벌써부터 이런 느낌이 오면 나머지 구간은 불을 보듯 뻔하다. 어차피 30㎞를 넘어선 이후에는 정신력으로 버텨내야 하지만 쉽지 않을 듯싶다. “마라톤은 30㎞까지는 대강 뛰고 그 이후에 죽을힘을 다해서 뛰는 경기”라고 누가 말했던가.

안경 무게라도 줄여보자는 심정으로 20년만에 일회용 콘텍트렌즈를 꼈다. ©박정량

아직까지 옆의 달림이에게 뒤처질 정도는 아니지만 ‘그만 뛰고 싶다’는 마음이 뭉게뭉게 밀려온다. 당장이라도 그 자리에 그대로 서버리고 싶지만, 지난여름 내내 흘린 땀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없다. 옆에서 페이스메이커를 하던 동료가 필자의 발걸음이 처지는 것을 보고는 “힘내세요~” 하면서 구호까지 붙여준다.

35㎞를 지나자 온몸이 뻣뻣해지면서 다리뿐 아니라 허리와 팔, 어깨까지 통증이 확산된다. 구호를 붙여주는 동료의 목소리가 더 커지는 걸 보니 발걸음이 더 늦어졌나 보다. “아직까지 3시간 25분에 들어갈 수 있다”는 동료의 목소리만을 붙잡고 달려간다. 자신의 한계점을 극복하고 계속 뛰면 느껴진다는 절정감인 ‘러너스하이(Runner’s High)’는 언감생심이다. 오로지 고통으로 머릿속이 하얗게 될 뿐이다. 이것도 나중에 생각한 것이고, 그때 당시에는 고통인지 뭔지 아무 생각도 없었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드디어 마지막 골인지점인 경기장으로 들어오는 길목. 정신이 없는 와중에서도 응원하는 여학생 한 명이 “뭣 하러 저렇게 뛰느냐, 나 같으면 안 뛸 텐데” 하는 소리가 귀에 쏙 들어온다. 마음속으로 수십 번 맞는다는 맞장구를 치면서 400m 트랙에 들어선다. 트랙을 돌면 곧바로 골인지점이다. 동료가 “조금만 더~” 하는 걸 보니 아직까지 희망이 남아있는 모양이다. 마지막 힘을 짜내 0.0001초씩 빠르게 한 발 한 발을 옮긴다. 드디어 골인. 3시간 25분 52초다. 기록 경신 성공이다. 골인 지점 통과 이후 다리에 쥐가 심하게 나는 바람에 땅바닥에 드러누워 고통에 몸부림치긴 했지만….

많은 달림이들이 자신의 한계와 싸우며 골인지점에 들어선다. ©박정량
중앙마라톤2.
400m 트랙을 돌면 곧바로 골인지점. 마지막 힘을 다하는 순간이다. ©박정량

도저히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마라톤의 목표 달성(초보자에게는 마라톤 완주)은, 그런 경험만으로도 인생에서 넘기 어려운 장애물을 만났을 때 그것을 헤쳐나가는 커다란 자산이 된다.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런 경험을 갖고 있고, 그런 것이 또한 마라톤의 가장 큰 매력인지도 모른다.

주로를 달리면서 “다시는 이런 미친 짓을 안 하리라”고 다짐하고 다짐했지만, 완주 메달을 걸고 뒤풀이 장소에서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켜니 마음이 말을 건다. “내년에 3시간 20분에 다시 한 번 도전해봐?”

이영란(전 매일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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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해 주간부 차장을 지냈다. 이후 한국능률협회 미디어부 국장, 뉴스월드 기획국장을 역임했다. 12년전 마라톤을 시작해 풀코스 50여회, 울트라(100km) 2회를 완주했다. 풀코스 최고기록은 3시간 27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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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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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런런런 2015-11-10 10:21:44

    저도 그 여학생처럼 '도대체 왜 뛰는 걸까'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제 남동생이 중학교때 장거리 마라톤을 뛰는 선수였는데(담배때문에 관뒀지만....;;) 어린 나이에도 그런 한계에 대한 극복의지는 생기는 것 같아요. 다음 마라톤에는 몇 초를 당기겠다라던가, 단순히 트로피나 메달이 중요하지 않고 본인의 기록을 앞당김으로서 더 성취감을 느끼더라고요. 참 신기합니다. 저는 제 인생에서 단 몇 초도 당길 생각이 없는데 누군가는 그 몇초를 위해 수십, 수백시간을 자신을 위해 쓰니까요. 오늘도 마라토너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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