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프전쟁 한가운데 있었던 ‘언저리 종군기자’의 취재일기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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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프전쟁 한가운데 있었던 ‘언저리 종군기자’의 취재일기

걸프전쟁(크기변환)
걸프전쟁은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이 계기가 되어, 1991년 1월 17일∼2월 28일 미국·영국·프랑스 등 34개 다국적군이 이라크를 상대로 전개한 전쟁이다. ⓒEverett Historical/Shutterstock

#1 KBS LA 특파원 사무실

1991년 새해가 오자마자 “중요한 취재가 있으니 중동에 있는 요르단 암만으로 펜기자와 함께 갈 준비를 하라”는 보도본부장의 명이 내려왔다. 그래서 비자부터 신청했다.

요르단 입국 비자(1991년 1월 7일부터 1991년 5월 7일까지). ⓒ황성규

출발이다. 미션은 사담 후세인 특별 인터뷰다. 앵커 박OO는 현지로 날아온다.

 

#2 요르단 암만공항 도착

1991년 1월 10일 LA를 떠나 10여 시간만에 중동 땅에 첫발을 디뎠다. 입국심사를 거치고 화물을 찾아 공항청사 밖으로 나오니 사람들이 몰려온다. 자기 차를 타라는 호객꾼들이다. 그중 한 명 턱수염을 기르고 TV에서 많이 본 듯한 중동인과 흥정했다. 가이드 겸 운전기사로 하루 250달러에 계약했다. 자동차는 구형 벤츠 300. 영어로 소통한다.

 

#3 호텔 도착

기자들이 가장 많은 호텔로 가자고 했다. 다행히 방 하나를 얻었다. 전 세계에서 온 기자들만 500여 명 묶는 호텔이다. 먼저 서울에 연락처와 함께 도착 보고를 했다. 호텔을 둘러봤다. 미국 4대 방송은 호텔 두 층씩을 따로 얻어 한 층에는 스튜디오, 조정실, 편집실을 차려놓고 또 한 층은 사무실, 회의실, 숙소로 사용하고 있었다. 몇 달 전부터 그러니 이 사건 뉴스 비중이 미국에게는 얼마나 큰지 알겠다.

 

#4 언저리 종군기자 시작

본사에서 연락이 왔다. 사담 후세인 인터뷰는 취소됐다. 다른 팀을 파견하려고 준비 중이니 그때까지 암만에서 뉴스 취재 부탁한다고. 이때부터 언저리 종군기자의 시작이다. 현재 이곳에 한국 언론은 아무도 없다. 펜기자는 취재 준비를 하고 영상기자인 필자는 한국으로의 화면 송출 라인을 확보하기 위해 암만 위성 지구국을 방문했다. 한국 규격 NTSC플레이어가 1대 있다. 그러니 편집은 불가능. 편집 없이 송출이다.

매일 오전 11~12시(현지 시간) 사이에 10분씩 암만에서 서울 KBS까지 위성청약을 하도록 본사 국제부와 협의했다. 현 사태 파악에 들어갔다. UN이 정한 이라크군의 쿠웨이트 철수 시한인 1991년 1월 15일 자정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라 미국과 UN의 움직임이 매우 빨라졌다. 전쟁은 필연이 된 듯 바그다드에서 철수하려는 사람들로 난리가 났고 한국 교민도 철수작전이 벌어졌다. 이곳 분위기 위주로 ‘암만에서 이OO 기자의 보도’ 한 꼭지를 송출했다.

 

#5 한국 종군기자단이 바그다드로

서울에서 방송기자, 신문기자 10여 명이 이라크 비자를 받고 바그다드로 출발했다고 한다. 그리고 모든 항공사가 운항을 꺼려한다. 하늘길이 막히기 시작했다. 요르단 주재 한국대사관 가족들도 대피하기로 결정, 이곳 암만을 떠난다. 한국 정부에서는 교민 철수용으로 사우디아라비아 리아드와 요르단 암만으로 400석짜리 보잉기를 보냈다. 이런 뉴스로 인해 서울과 LA에 있는, 필자와 이 특파원 가족들은 걱정이 많다. 사담 후세인에게 정한 마지막 시간이 다가오면서 전쟁 시작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전 언론이 난리다.

 

#6 바그다드에서 철수

1991년 1월 15일 오후 5시 45분 바그다드에서 한국인 마지막 철수팀이 암만공항에 도착한다기에 카메라를 메고 나갔다. 이라크 주재 한국대사관 대사와 공관직원 그리고 동아일보, 조선일보 기자가 마지막 비행기 편으로 바그다드에서 빠져 나왔다. KBS팀 3명도 철수했다. 한국 언론 중 MBC팀 4명만이 바그다드에 남아 있다. 그중에 한 명은 서른한 살의 여기자다. 마지막 항공편을 남기고 양사 모두 본사에서 철수 명령을 받고 고민하다가 팀마다 비밀투표로 철수를 결정하기로 했다. MBC팀 4명은 3대1로 남는다. KBS팀 3명은 3대0으로 철수한다.

 

#7 결국 전쟁이 터졌다(1991년 1월 17일 오전 2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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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쿠웨이트를 무대로 전개된 전 걸프전쟁 지도와 당시 이라크 대통령이었던 사담 후세인. ⓒ황성규

눈을 떴다. 전면 공격이다. 바그다드는 불바다다. 우리 호텔에서는 전화 걸기 전쟁이 벌어졌다. 기자들만 500명이 이용하는 호텔이라 전화가 불통이다. 바그다드에서 철수한 후배들이 머무는 호텔로 내달렸다. 방을 하나 더 잡았다. 본사로 전화를 건다. 이 특파원이 통화를 한다. 다른 방 전화를 또 연결한다. 후배들은 기사 역송고를 받는다. 해가 뜰 때까지 통화는 계속되었다. 해가 뜨자 오늘 보낼 뉴스 취재를 해서 서울로 보냈다. 그러고 나니 바그다드에 남아 있던 MBC 취재팀이 걱정된다. 잘 아는 후배들인데…

 

#8 이라크의 반격

다국적군의 공격으로 시작된 페르시아만 전쟁은 하루가 지나 이라크군의 반격으로 이스라엘의 텔아비브가 스커드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 이스라엘 또한 반격에 나선다면 중동전쟁으로 확전된다. KBS 취재팀도 한 팀은 이스라엘로 요단강을 건너기로 했다. 호텔 로비에 바그다드에서 전쟁 발발 후 어렵게 철수한 기자들을 만나 인터뷰했다. 그리고 동양인 MBC 기자들을 보았는지 물었다. 못 보았단다.

 

#9 무사히 돌아오다

1991년 1월 18일 오후 10시경 바그다드에서 MBC 펜기자 2명, 촬영기자 2명 등 4명 모두 암만으로 돌아왔다. 차량을 대절하여 30시간이 더 걸렸단다. 17일 새벽 바그다드 호텔에서 취침 중 사이렌이 울리고 온통 하늘에 파란 섬광이 그려지고 멀리 지평선이 불바다로 변했다고 한다. 그들은 카메라를 메고 몇 컷 찍으며 호텔의 안내로 대피소로 피신했다. 그 후 포격이 잠시 멎은 틈을 타 상황 판단을 해보고 철수를 결심했다고 한다. MBC 취재팀은 어렵게 차량을 대절하여 오후 1시 반경 바그다드를 출발했다. 계속되는 다국적군의 공습과 그 흔적을 뒤로하고 달렸다. 중간중간 이라크군 검문소에서 몇 시간씩 기다렸다 통과해야 했다. 요르단 국경선에서의 입국 비자가 없는 관계로 오랜 시간을 머물러야 했고, 또 카메라와 테이프는 압류 당한 채 맨몸으로 밤늦게 입국한 것이다. 필자는 그들을 인터뷰했다. 경쟁사 기자의 무사함을 그리고 바그다드 포격 순간을, 다음 날 뉴스 송출을 했다.

 

#10 참전국 기자들을 공격하다

참전기념 우표.
걸프전쟁 참전 기념 우표. ⓒ황성규

우리가 묵는 호텔 앞에서도 미국 기자들에게 달려든다. 어느 날부턴가 한국 기자들에게도 따지러 몰려든다. 우리의 가이드가 열심히 막아서며 설명한다.

 

#11 교대 팀을 기다리며

하늘길이 막혔다. 전투기 외에는 중동 상공에 어떤 비행기도 접근할 수 없다. 이젠 배도 고프다. 먹고 싶은 것도 많아졌다. 머리 위로는 미사일이 날아다닌다. 다국적군이 쏘아 대고 이라크가 가끔씩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로 스커드 미사일을 쏜다. 필자는 포탄이 터지는 것도, 터진 흔적도 보지 못한 채 요르단에서 전쟁 리포트를 계속 만들어 송출하고 있다.

 

#12 언저리 종군기자를 끝내다

보도본부 내에서 걸프전쟁 취재 희망자 지원을 받아 선발한 5년차 후배들이 하늘길을 돌고 돌아 어렵게 2월 1일 암만에 도착했다. 그 후배들에게 우리를 도와준 운전기사 겸 통역 겸 가이드를 넘기고 술도 한잔 못한 채(술이 없음) 두 밤을 더 보내고 LA로 돌아왔다. 사담 후세인 인터뷰하러 갔다가 전쟁 구경도 못한 채 전쟁 뉴스를 취재한 종군기자. 그래서 필자는 스스로를 ‘언저리 종군기자’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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