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도 탐냈던 인재, ‘우리의 소원’ 작곡가 안병원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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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도 탐냈던 인재, ‘우리의 소원’ 작곡가 안병원

1989년 대한민국의 한 여대생이 북한을 불법 방문한다. 북한의 대대적인 환영을 받은 그가 부른 노래는 ‘우리의 소원’. 이후 북한에서도 이 노래에 관심을 갖게 되고 널리 불려진다. 그리고 북한에서는 이 노래를 작곡한 안병원 선생님을 모셔가려 한다는 제보가 전해지는데….

 


 

#1 캐나다 토론토에서 취재를

KBS 취재팀(필자 포함)은 안병원 선생님에게 ‘우리의 소원’을 작곡하게 된 배경 그리고 요즘 근황을 취재하고자 연락을 드렸다. 허락을 받고 캐나다 토론토로 갔다.

젊은 시절의 안병원 선생님. ⓒ황성규

#2 K중학교 은사

안병원 선생님은 필자에 K중학교에 다닐 때(1958~1961년) 음악 선생님이셨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의 소원’ 작곡자가 누구인지 몰랐다. 안병원 작곡이라 해서 동명이인의 안병원인줄만 생각했다. 필자가 중학교 입학시험을 볼 때는 실기시험도 있었다. 음악 실기시험은 한 사람씩 시험관 앞에서 노래를 불렀고 미술 실기시험은 ‘주먹을 쥔 왼손 두 번째 손가락을 펴고 그리시오’였다. 또 체육 실기시험은 턱걸이, 제자리뛰기 그리고 100m 달리기였다. 그때 음악 실기시험부터 중학교 3년간 음악을 가르쳐 주신 안병원 선생님을 취재하게 된 것이다. 선생님은 어린이를 사랑하는 교육자이셨다.

 

#3 아버지 작사, 아들 작곡

선생님께서 서울대 음대 재학 시절인 1947년 ‘우리의 소원’을 작곡했는데 원래 가사는 ‘우리의 소원은 독립’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듬해인 1948년 남과 북에 따로 정부가 수립되면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가사를 바꾸었다. 그 외에도 ‘송알송알 싸리잎에 은구슬’로 시작하는 동요 등 300여 곡을 작곡했고, 미국 민요 ‘징글벨’의 가사를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라는 우리말로 가사를 지어 어린이들에게 경쾌한 리듬을 선물했다. 사실 ‘우리의 소원’은 KBS 라디오 삼일절 특집 드라마의 주제곡으로 만들어진 노래였다. 당시 안석주 선생님이 극본을 쓰고 가사도 만들었는데, 그 분이 바로 안병원 선생님의 아버지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노래는 음악 교과서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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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소원’ 노래가 실린 당시 음악 교과서. ⓒ황성규

#4 KBS 어린이 합창단의 미국 순회공연

안병원 선생님은 6·25 전쟁이 휴전되고 그 다음 해, 그동안 가르치고 지휘한 KBS 어린이 합창단을 데리고 미국 순회공연을 떠났다.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쳐 싸워준 보답이었다. 미국 48개 주를 3개월간 돌았다.

 

#5 제자들을 기억하다

안병원 선생님은 1952년에 음악 교사가 되어 경기여중, 경복중 그리고 용산중학교를 거쳐 1968년 숙명여대로 옮길 때까지 16년간 학생들을 가르치셨다. 그 많은 제자들도 선생님을 기억하고 그리워할 것이고 필자 또한 그 시절이 생각난다. 당시 우리들은 피아노를 배웠다. 피아노도 없이…. 지금도 기억하는 음계 ‘미미레 도도 미레 미레도 미미파 솔솔 라라 솔파미’. 시험지에 건반을 그려 책상 위에 놓고 건반을 치면 입으로 소리가 난다. 피아노를 본 적은 없지만 이렇게 몇 곡을 배웠다. 선생님 제자들은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많은 이들이 있다. 그들을 기억하시고 그 시절을 회상하는 것만이 근래의 낙이신 듯했다.

 

#6 이민을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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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안병원 선생님의 가족 사진. ⓒ황성규

안병원 선생님은 1974년 어머니 친척이 계시는 캐나다 토론토로 전 가족이 이민을 간다. 생전 처음 철공소도 다녀봤다. 리쿼스토어(편의점)도 사서 운영했으나 실패하고 빵집을 운영했다. 1959년 결혼하여 사모님으로 살아오던 아내의 노력으로 이민생활이 다소 안정되고 아이들도 잘 자랐다. 이에 선생님은 음악활동과 취미로 해오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7 북한에서 보낸 초청장을 받다

“대한민국에서만 불려지던 ‘우리의 소원’이 북한 땅에서도 인기가 있다. 그리고 나를 초청하겠다고 두 번씩이나 연락이 왔다”고 얘기하셨다. 묻지도 않은 답변이다. “선생님 그럼 북한에 가실건가요?” 하고 물었다. 지금은 아니라고 답하셨다. 이유에 대해서는 “난 서울사람이고 이산가족들도 많은데 내가 북한을 방문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라고 하셨다.

 

#8 안병원 선생님의 소원

“빨리 통일이 되어 남북한 어린이 합창단을 지휘하여 ‘우리의 소원’을 힘차게 불러보는 것이 내 소원이지”라고 말씀하신다. 취재를 끝내고 편집하여 방송했다.

 

#9 방송 후

우리나라에서 안병원 선생님을 초청했다. 서울 시립소년소녀합창단 송년공연 지휘를 의뢰했다. 또 남북 고위급회담이 서울에서 열릴 때 북한 공연단도 함께 와 남북 합동공연을 했다. 이때 공연 마지막 부분에 선생님을 무대로 불러 남북 공연단과 관객 2100명이 함께 어우러져 ‘우리의 소원’을 힘차게 불렀다. 문화부는 선생님에게 보관문화훈장도 수여했다.

 

#10 마지막으로 남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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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5일 소천하신 고(故) 안병원 선생님의 장례식 모습. ⓒ황성규

현재까지 68년이나 소원을 비는 나라가 어디 있겠는가? 이제는 통일이 되어 ‘우리의 소원’도 흘러간 노래가 되고 <가요무대>에서나 들었으면 좋겠다.

이런 말씀을 남기고 안병원 선생님은 2015년 4월 5일 소천하셨다. 하늘에서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을 지휘하는 영원한 선생님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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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우리의 소원’ 노래를 함께 부르며 즐거워하시는 안병원 선생님 생전 모습. ⓒ황성규

안병원 선생님은 2001년 북한에 다녀오셨다. 남북한 지도자가 손에 손잡고 ‘우리의 소원’을 노래하고 6·15선언이 있은 뒤에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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