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만에 어머니 찾은 아들이 눈물로 쓴 사모곡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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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만에 어머니 찾은 아들이 눈물로 쓴 사모곡 <3일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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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의 약속> 영문판 표지. ©황성규

#1 미국을 울린 <The Three Day Promise>

“어머니! 제가 돌아왔습니다.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지난 33년의 세월 동안 늘 저는 어머니와 함께 있었습니다. 어머니! 저는 3일의 약속을 지키는 아들이기를 무척이나 원했습니다.”

이렇게 절규하는 내용을 담은 책 <3일의 약속> 영문판은 당시 미국의 유명한 북 칼럼니스트 폴린 필립스(Pauline Phillips)의 칼럼 ‘디어 애비(Dear Abby)’를 통해 1200개 메이저 언론에 소개됐다. 이내 많은 독자들의 호응 속에 읽혀졌으며 격려하는 편지가 하루 5000여 통이나 날아들었다. 필자는 KBS LA 특파원 시절(1990년) 이 감동적인 스토리를 엮어낸 정동규 박사를 ‘뉴스 파노라마’ 시간에 소개하고자 롱비치를 찾았다.

 

#2 롱비치 정동규 박사 거실

1983년 북한 방문 당시 사진을 보기 위해 스크린을 펼치고 카메라를 설치했다. 사진을 보기 전 정동규 박사는 가장 먼저 보물처럼 꼭꼭 싸둔 물건을 하나 꺼내 보여준다. 숟가락이다. 어머니가 “동규도 함께 먹자”고 하며 매끼마다 상에 올렸던 바로 그 숟가락이란다. 우린 잠시 숟가락을 보며 그의 어머니가 차려놓은 밥상을 떠올렸다. 그녀는 돌아가실 때까지 꼬박 29년 동안 밥상을 차려놓고 아들이 쓰던 숟가락을 놓은 채 기다렸다.

 

#3 왜 <3일의 약속>인가?

청진의과대학에 다니던 정동규는 6·25전쟁이 나던 1950년 12월 2일 아주 춥던 겨울에 중공군의 개입으로 국군이 철수하면서 3일 안에 다시 북진한다는 말을 듣고 잠시 몸을 피하고자 집을 나선다. 어머니는 양말, 속옷 그리고 약간의 쌀을 싼 보따리를 내주며 “부디 몸조심해라. 내 아들아~” 하며 울먹인다. 아들은 어머니에게 사흘 안에 돌아옵니다. 그렇게 어머니를 안심시키고 길을 떠난 지 33년이 지난 1983년, 정동규 박사가 북한 땅을 찾기까지를 기록한 책이 바로 <3일의 약속>이다.

 

#4 33년간의 기록

함경도 청년 정동규는 “3일 안에 돌아온다”고 어머니와 약속하고 집을 나와 다른 청년 156명과 함께 성진항을 떠나던 LST(상륙정)에 올랐다. 얼마 후 이들은 백골사단에 자진 입대하여 23연대 수색중대에 배치 받는다. 군번도 없는 이들 학도병들은 가칠봉 전투와 김화지구 전투를 비롯한 수많은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다. 당시 정동규와 함께 수색중대 중대원이던 156명 가운데 휴전 후 살아남은 동료는 겨우 11명에 불과했다. 그가 살아남은 것은 기적이었다.

전쟁이 멈추고 휴전이 되자 제대를 한 정동규는 학업을 계속하기로 마음먹고 수도의과대학(지금의 고려대)에 진학한다. 혈혈단신 대한민국에서 학업을 계속하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았다. 그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정동규는 수석 졸업의 영광을 차지했다. 미국 유학의 길이 열리고 미국에서 또 열심히 노력한 그는 심장병 전문의로 대학교수가 되었다.

 

#5 북한 방문 결심

1983년 어느 날 하루도 잊어본 적이 없는 어머니를 찾아 정동규 박사는 “3일 안에 돌아온다”던 약속을 33년이 지난 지금에라도 지키고자, 아니 어머니가 보고 싶고 안녕하신지 궁금하여 고향 방문을 결심한다.

 

#6 드디어 어머니를 만나다

1983년 7월 미국 시민권자가 된 정동규 박사는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함경도 땅을 밟았다. 어머니는 그곳에 안 계셨다. 누이들의 안내로 묘지를 찾았다. 꼭 밥상을 차려놓고 기다리시던 어머니가 1979년, 그가 북한 땅을 밟기 불과 4년 전에 기다림을 멈추셨다. 그는 “어머니와의 약속을 못 지킨 이 아들, 사죄드립니다” 하며 통곡했다. 그리고 누이들이 전해준 숟가락을 가슴에 품고 돌아섰다. 이런 슬픈 이야기는 마지막이어야 한다는 심정으로 그는 글을 썼다. 자비로 책을 만든 뒤 ‘디어 애비’라는 칼럼을 연재하는 북 칼럼니스트 폴린 필립스에게 보냈다. 내용에 감동받은 그녀는 자신의 칼럼에 책을 소개했다. 이런 이야기를 사진 자료와 본인 육성으로 구성해 TV 방송 ‘뉴스 파노라마’ 시간에 소개했다.

당시 미국신문에 실린 어머니 사진과 묘소.
당시 미국 신문에 실린 정동규 박사 어머니 사진과 묘소. ©황성규

#7 방송이 나간 후

  • <3일의 약속> 한국어판이 서점에 나왔다.
  • KBS에서 50부작 <3일의 약속> 드라마 제작이 결정됐다.
  • 함경북도 출신 ‘3일의 약속 전우회’가 결성됐다.
  • 정동규 박사와 함께 전쟁을 겪었던 수색중대 중대원 생존자 11명은 1992년 ‘국군의 날’에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 2004년 4월 28일에는 ‘전우 전공비’를 세웠고, 연대 창설일인 6월 20일에는 매년 추모행사를 갖고 장학금도 지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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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전우 전공비’ 앞 추모행사. ©황성규

추모행사를 마친 생존 전우들은 “우리도 죽기 전에 부모님과의 약속을 지키게 해달라”며 북녘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8 진짜 어머니를 만나러 가다

1995년 정동규 박사는 워싱턴 DC에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탑 건립사업에 쓰도록 43만8000달러(약 5억1000만원)를 기부했다. 그리고 6·25전쟁 참전용사 사업에 적극 참여하며 그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2014년 11월 3일 82세였던 정동규 박사는 북한에 사는 두 누이와 여동생 그리고 미국에 있는 처와 두 아들을 둔 채 진짜 어머니를 만나러 영원히 먼 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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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신문에 실린 도네이션 기사와 어머니 이야기 그리고 살아생전 정동규 박사 모습. ©황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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