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역사] 2010년 11월 13일 아웅산 수치 가택연금 해제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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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역사] 2010년 11월 13일 아웅산 수치 가택연금 해제

2015.11.13 · 심언준(전 미디어칸 대표)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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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수치 여사는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상징에서 세계 평화의 상징으로 거듭났다. ⓒ360b/Shutterstock

“여러분들을 보니 정말 기쁘고 힘이 납니다. 저는 오늘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아웅산 수치 여사는 자택 앞에서 이틀을 기다린 5000여 명의 시민들에게 이같이 말했다. 1990년 이후 가택연금과 해제를 여러 차례 반복한 끝에 2010년 11월 13일 가택연금에서 완전히 해제되면서 그녀를 맞이한 시민들에게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평범한 주부에서 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수치 여사의 부친은 미얀마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아웅산 장군이다. 미얀마는 1824년부터 영국과 벌인 세 차례 격렬한 전쟁 끝에 패배하면서 1886년 영국의 식민지가 됐다. 아웅산 장군은 미얀마의 독립투사로 영국과 일본에 무력 항쟁함으로써 미얀마의 독립을 이끌어냈다.

아웅산 장군의 딸로 태어난 수치 여사는 두 살 때 아버지가 정적(政敵)들에게 암살된 후, 어머니가 대사로 근무하던 인도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옥스퍼드대학을 다녔다. 이후 뉴욕에 있는 UN본부에서 일하다가 1972년에 영국 학자와 결혼해서 아들 둘을 낳고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았다.

영국 런던에서 가정주부로 살던 수치 여사가 민주화운동의 상징이 된 것은 1988년 모친이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병간호를 위해 귀국한 것이 발단이 됐다. 그해 8월 8일 전국적 민주화운동인 ‘8888 민주화항쟁’과 이를 무참히 진압하는 군부를 목격하면서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녀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은 1990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지만, 군부는 정권 이양을 거부하고 수치를 가택연금에 처했다. 영국에 살던 남편과 자녀들은 미얀마 입국을 거절당했다. 세계의 이목이 쏠리면서 남편은 몇 번 미얀마를 방문했지만 함께 살 수는 없었다. 수치 여사는 조건부 출국을 허가 받긴 했지만 입국 저지 위험이 높아 출국하지 못했다. 1999년 남편이 암으로 타계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가택연금 중이던 1991년 수치 여사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비폭력 투쟁’에 대한 공로로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군부의 반대로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해 남편과 두 아들이 대리 수상했다.

2010년 11월 13일 가택연금에서 해제된 이후 수치 여사는 이듬해 4월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에서 당선되면서 정치권에 정식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같은 해 6월에는 ‘노벨상 역사상 가장 특별한 순간’이라고 평가받는 노벨평화상 수락 연설을 했다. 그녀는 이 연설에서 “자신의 노벨상 수상이 세계가 미얀마를 잊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1990년 이후 25년 만의 자유 총선

한편 지난 11월 8일 미얀마에서는 1990년 이후 25년 만에 처음으로 자유 총선이 치러졌다. 미얀마에선 1988년 대규모 민주화 시위로 네윈 군사독재 정권이 무너졌으나 곧바로 신군부가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 지난 1990년 총선에서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압승을 거뒀지만 군부가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이번 선거는 NLD가 1990년 이후 처음으로 참여하는 총선이다.

이번 총선에서는 수치 여사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승리가 예상되고 있다. 다음 주 중에는 공식 집계 자료가 발표될 예정이다. NLD가 승리할 경우 수치 여사의 차기 행보도 관심사다. 이번 총선에서 야권이 압승하더라도 수치 여사가 대통령이 될 수는 없다. 배우자나 자녀가 외국 국적인 사람은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헌법 조항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이 대통령이 되지 못하더라도 선거에서 이기면 NLD가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연정 지도자가 되겠다고 밝힌 바 있어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