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교과서 논쟁이 던지는 또 하나의 숙제 – 전성기뉴스
콘텐츠 바로가기

top

역사 교과서 논쟁이 던지는 또 하나의 숙제

역사 교과서 문제로 한 달이 넘도록 온 나라가 난리입니다. 벌집을 쑤셔놓은 것 같다는 표현이 지금의 나라 사정에 꼭 들어맞는 말이라고 해도 전혀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정치 지도자들이라는 사람들 입에서 쏟아지는 막말과 자신들의 주장과 의견만이 옳다고 떼 지어 다니며 악 써대는 여러 무리의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막장도 이런 막장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역사 교과서를 만든다는 것은 물론 중요한 일에 틀림없습니다. 자라나는 후세들에게 올바른 역사와 사실을 가르치고 전해주는 것만큼 소중한 일도 흔치 않을 터이니 바른 내용의 제대로 된 교과서를 펴내는 작업은 아무렇게나 얼렁뚱땅 처리해서는 안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교과서가 무엇입니까?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교실에서 올바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곁에 두고 보라는 책 아닙니까? 이러한 책을 만드는 어른들이 작업에 들어가기 전부터 사생결단의 각오로 갈기갈기 찢어져 싸우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책이 나오게 된다면 완성된 교과서를 학생들은 과연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게 될까요? 난산 끝에 태어난 옥동자로 볼까요? 아니면 문제투성이의 골치 아픈 저질 서적의 하나로 볼까요?

보는 분마다 다르고 이 글을 읽는 분마다 생각이 엇갈릴 수 있지만 저는 국정이니, 검정이니 나뉘어 싸우는 것 자체가 오늘 이 시대의 기성세대가 벌이는 또 하나의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국정이나 검정은 만드는 방식의 차이일 뿐 교과서에 담길 내용이 궁극적으로 다를 수는 없습니다. 해석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지만 역사가 전하는 옛 사실은 여러 갈래일 수 없습니다. 오직 한 갈래일 뿐입니다.

해석이 극단적으로 다르고, 역사를 바라보는 눈이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있어 제대로 된 교과서를 만들지 못했다면 이에 관계된 이들은 언제든지 토론과 대화의 장을 열고 하나의 목소리를 냈어야 합니다. 역사를 공부했다는 학자와 교과서를 만드는 작업에 관여한 공무원 그리고 역사를 교실에서 가르치는 교사들을 모두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이런 과정을 지금까지 외면하고 무시해 왔습니다. 그리고는 이제 와서 서로를 헐뜯고, 눈에 핏발을 세우고,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다며 상대방 비난에만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Nomad_Soul/Shutterstock
서로 헐뜯고 비난하며 부끄러운 어른의 모습으로 만들어진 교과서가 아이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요. ⓒNomad_Soul/Shutterstock

주일특파원으로 도쿄에서 일했던 2012년 초, 한국에서는 일본의 역사 교과서를 두고 국민적 분노가 하늘을 찔렀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후소샤(扶桑社)의 역사 교과서가 한·일 외교전선에 대형 사고를 쳤기 때문입니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두둔하고 독도를 일본 영토라고 우겨대는 내용을 담은 후소샤의 교과서는 출간 직후 한국 정부와 국민들로부터 집중적인 비난 대상이 됐습니다. 분노한 한국 국민들이 교과서를 불태우고 일본 제품 불매운동까지 벌이자 이 책은 단숨에 일본 출판계의 화제작이 됐습니다. 중학생들이 공부할 때 곁에 두도록 나온 이 교과서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치솟으면서 서점가는 때 아닌 특수를 누렸습니다.

저는 아직도 또렷이 기억합니다. 도쿄 신주쿠에 있는 대형 서점 ‘기노쿠니야’의 출입구 앞에 수북이 쌓여 있던 후소샤의 역사 교과서와 그 앞에서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구경하거나 책을 사가던 일본인 독자들을 말입니다.

 

일본 역사 교과서를 베스트셀러로 만든 한국의 분노

인기와는 태생적으로 거리가 먼 학교 교실의 역사 교과서를 초대형 베스트셀러로 밀어 올린 주인공은 누구였겠습니까? 다름 아닌 한국 정부와 한국 국민들의 분노 그리고 서울에서 벌어진 후소샤 교과서 화형식과 일본 상품 불매운동으로까지 이어진 험악한 분위기였습니다. “왜 서울에서는 갑자기 일본의 역사 교과서를 불태우고, 정부와 국민이 한 목소리로 책을 낸 출판사를 규탄하고 저자들을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로 몰아갔을까?” 이러한 일본 독자들의 관심이 후소샤 역사 교과서에 연이어 꽂히면서 오히려 출판사를 하루아침에 돈방석에 앉도록 해준 것이었습니다.

역사 교과서 파동을 지켜본 제 뇌리에는 이런 생각이 스쳐갔습니다. ‘문제가 많다고 지적하지만 왜 한국 학자들은 일본 학자들과 공동으로 토론 한번 제대로 벌이지 않는가? 왜 머리를 맞대고 사실을 조목조목 따지고 반박하려 들지 않는가? 자신이 없는 것인가, 아님 무성의한 것인가? 왜 무조건 목소리부터 높이고 보는 것인가?’

일본인의 침착성과 차분함은 이미 세계가 다 아는 사실이라 더 언급할 것도 없습니다. 고베 대지진 때도 그랬고, 가까이는 2011년 대지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대재앙 속에서도 그들은 냉정을 잃지 않았고 슬픔과 공포를 속으로 삭이면서 무서울 정도로 자제심을 잃지 않았습니다. 땅바닥이 꺼져라 두들기며 대성통곡을 하는 이도 TV 화면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고 “내 자식, 가족 살려내라”며 몸부림치는 유가족의 모습도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차분함을 넘어 얼음장처럼 차갑기까지 한 그들의 냉정함에 가슴이 섬뜩해지는 이유입니다.

일본인들의 부부 싸움에 관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들은 말싸움이 거칠어지고 감정이 격해지면 창문과 문부터 다 닫아걸고 소리가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한답니다. 그리고 본격적인 싸움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자신들은 싸우고 치고받더라도 내부의 일만큼은 밖에서 알지 못하도록 할 요량인 게 분명합니다. 남편과 아내 간의 다툼이 볼썽사나운 싸움인 이상 이처럼 추한 모습을 적어도 밖에는 보이고 싶지 않다는 계산입니다.

 

절제와 배려 무시한 비난, 반목의 끝은 결국 손해

이에 비해 우리는 어떻습니까? 멀리 볼 것도 없이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이나 저나 할 것 없이 우선 자신을 돌아보면 답이 절로 나올 것입니다.

역사 교과서 문제의 본질과 동떨어진 단어로 들릴지 몰라도 저는 ‘절제’라는 두 글자를 내내 머릿속에서 지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상대방의 처지와 속내는 안중에도 없이 오로지 자신의 견해만을 앞세우고, 감정을 흐트러뜨리며 속을 열어 보이는 것은 비즈니스는 물론 세상살이에서도 절대 좋을 것이 없습니다. 절제의 차분함 속에 있어야 우리는 좀 더 많은 것을 생각하고, 주변을 돌아보고, 상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더 좋은 결론과 더 큰 실익이 돌아올 수 있습니다.

우리 한국인, 한국 사회의 조급성은 세계적으로도 이미 정평이 나있어서 더 자세히 언급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님들과 저만이라도 반 발짝 느리게 가고, 차분하게 생각하고, 세상을 여유 있게 바라보는 절제의 노하우를 익혀 보시지 않겠습니까?

주위로부터 존중받으며 곱게 나이 먹는 비결에 대해 수많은 가르침과 지혜가 전해옵니다만 저는 이 난에서 ‘절제’를 특히 강조하고자 합니다. 먼저 성 내고, 먼저 목소리 높이고 속을 내보이는 인생이 받아들 손익계산서 항목은 빨간 숫자가 검은 숫자보다 훨씬 더 많을 수 있습니다. 참, 이야기가 역사 교과서에서 시작해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습니다만 검정 교과서의 잘못된 서술만큼은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보수 꼴통’임을 자인하는 게 될까요?